NOVEL

EPISODE 02

2화. 멈춘 시계의 이름

황궁의 모든 시계가 멈춘 순간, 에단 블랙이라는 이름이 세계의 오류가 되었다.

2026.06.14 약 11분 WEB NOVEL

시계가 멈췄다.

하나가 아니었다.

침실 벽난로 위의 작은 금시계. 복도 끝에 걸린 황실 표준시계. 정원 쪽 회랑에서 울리던 종시계.

모든 초침이 같은 자리에서 숨을 멈췄다.

똑.

마지막으로 들린 소리는, 시간이 죽는 소리 같았다.

리아의 얼굴에서 피가 빠져나갔다.

그녀는 방금 전까지 완벽한 피해자였다. 흰 신관복은 구겨진 곳 하나 없었고, 눈물은 너무 늦지도 빠르지도 않게 흘렀다. 누구라도 그녀를 믿고 싶어질 만큼 정확했다.

그런데 에단 블랙이라는 이름이 떨어진 순간, 그 정확함이 무너졌다.

나는 그 얼굴을 보았다.

두려움.

그리고 더 깊은 곳에 숨겨진 계산.

“어떻게…….”

리아의 입술이 아주 작게 움직였다.

목소리는 나오지 않았다.

카엘이 그녀를 돌아봤다.

“리아.”

그의 부름에는 명령보다 걱정이 먼저 묻어 있었다.

원작의 독자였던 나는 그 목소리를 안다.

성녀가 다치면 황태자는 분노한다. 성녀가 울면 황태자는 검을 든다. 성녀가 침묵하면 황태자는 대신 죄인을 정한다.

그게 이 이야기의 규칙이었다.

하지만 지금, 카엘은 처음으로 리아에게 대답을 요구하고 있었다.

좋다.

규칙은 이미 흔들렸다.

나는 손에 쥔 베일을 접지 않은 채 한 걸음 물러섰다.

기사 둘이 나를 둘러싸려 했지만, 카엘이 손짓으로 멈췄다.

그는 나를 보지 않았다.

여전히 리아를 보고 있었다.

“에단 블랙을 알고 있나?”

리아의 속눈썹이 떨렸다.

“저는…….”

그녀는 말을 고르느라 너무 오래 침묵했다.

억울한 사람은 보통 바로 부정한다. 무고한 사람은 질문의 뜻부터 묻는다. 하지만 리아는 가장 안전한 대답을 찾고 있었다.

그 짧은 침묵이 나에게는 증언이었다.

나는 입을 열었다.

“성녀님께서 모른다고 하시면 이상하겠죠.”

카엘의 시선이 내게 돌아왔다.

검은 눈동자가 낮게 가라앉아 있었다.

“네가 그 이름을 어떻게 아는지부터 말해라.”

“전하께서는 지금 순서를 착각하고 계십니다.”

나는 베일을 들어 보였다.

“저는 피고인으로 몰렸고, 이 베일은 증거라고 했습니다. 그렇다면 저는 반대 증거를 낼 권리가 있습니다.”

“네가 방금 말한 것은 증거가 아니라 이름 하나다.”

“맞습니다.”

나는 웃지 않았다.

“그래서 더 위험한 겁니다.”

카엘의 눈썹이 미세하게 움직였다.

나는 1화의 마지막 장면을 떠올렸다.

원작에는 에단 블랙이라는 인물이 나오지 않는다.

정확히 말하면, 나와 같은 독자는 그 이름을 본 적이 없다.

하지만 아델라인의 기억 속에는 있었다.

이 몸은 내가 들어오기 전부터 이 세계에 살았다. 그녀는 사랑받지 못했고, 미움받았고, 결국 첫 장에서 침묵했다.

그런데 그 침묵 아래에는 잘려 나간 기억이 있었다.

어젯밤.

황궁 서쪽 별관. 성녀의 베일을 들고 달아나던 검은 망토의 남자. 그리고 아델라인이 마지막으로 들은 이름.

에단 블랙.

누군가 그 이름을 부르는 순간, 아델라인은 뒤통수를 맞고 쓰러졌다.

깨어났을 때 나는 이 침대 위에 묶여 있었다.

그러니 내가 아는 것은 하나뿐이었다.

에단 블랙은 원작에 없어야 하는 인물이다.

하지만 이 사건에는 있었다.

“그 남자를 부르세요.”

나는 카엘에게 말했다.

“황궁에 없다면 출입 기록을 확인하시고, 출입 기록이 없다면 감시석을 확인하십시오. 그것도 없다면 더 좋습니다.”

“뭐가 좋다는 거지?”

“황궁에 들어온 적 없는 사람이 황궁 내부 사건의 증인이 되는 셈이니까요.”

하녀 하나가 고개를 더 깊이 숙였다.

기사는 숨도 크게 쉬지 않았다.

카엘은 침묵했다.

그 침묵이 길어질수록 나는 확신했다.

황궁은 에단 블랙을 알고 있다.

그리고 리아도 알고 있다.

문제는 그 이름을 여기서 꺼내면 안 된다는 것뿐이다.

그때였다.

멈춘 시계 아래에서 낮은 소리가 들렸다.

찌직.

공기가 찢어지는 소리.

내 눈앞에 다시 문장이 떠올랐다.

The story has detected an error. (이야기가 오류를 감지했습니다.)

그 아래에 새로운 문장이 이어졌다.

Correction target: Adelaine Rose Berg. (보정 대상: 아델라인 로제 베르크.)

나는 눈을 가늘게 떴다.

정정 대상.

좋아.

이제는 아주 노골적으로 나오네.

나는 허공의 문장을 향해 아주 작게 말했다.

“해보든가.”

순간 목이 조였다.

보이지 않는 손이 목을 누르는 느낌이었다.

숨이 막혔다.

무릎이 꺾일 뻔했다.

하지만 나는 베일을 놓지 않았다.

이 세계가 나를 다시 침묵시키려 한다면, 내가 할 일은 하나였다.

더 크게 말하는 것.

“전하.”

목소리가 갈라졌지만, 방 안에는 분명히 울렸다.

카엘의 눈이 좁아졌다.

“공개 재판까지 갈 필요도 없습니다.”

나는 목을 누르는 압박을 버티며 말했다.

“지금 이 자리에서 확인할 수 있는 사람이 있습니다.”

리아가 나를 보았다.

이번에는 눈물을 흘리지 않았다.

“서쪽 별관의 야간 경비대장.”

카엘의 표정이 굳었다.

“그리고 성녀님을 이 방까지 안내한 하녀.”

방 안의 하녀들 사이에 작고 빠른 흔들림이 번졌다.

정답은 언제나 사람의 몸에 먼저 나타난다.

누가 무엇을 봤는지, 누가 무엇을 숨기는지, 누가 어떤 이름을 들었는지.

입은 거짓말을 해도 몸은 늦게 따라온다.

나는 그 흔들림을 따라 시선을 옮겼다.

문가에 선 어린 하녀.

회색 눈. 창백한 입술. 손가락 끝에 남은 붉은 실 자국.

아델라인의 기억이 아주 작게 반응했다.

저 아이가 내 손목을 묶었다.

그리고 울면서 말했다.

죄송합니다, 아가씨.

나는 하녀를 향해 말했다.

“이름.”

그녀가 움찔했다.

카엘이 낮게 경고했다.

“아델라인.”

“저 아이 이름을 묻는 것도 황실 모독입니까?”

나는 카엘을 보지 않았다.

하녀만 보았다.

“말해.”

그녀의 입술이 떨렸다.

“마, 마레나입니다.”

“마레나.”

나는 이름을 천천히 되풀이했다.

이야기 속 엑스트라에게 이름이 생기는 순간, 장면은 달라진다.

이제 그녀는 배경이 아니었다.

증인이 될 수 있는 사람.

숨겨진 진실의 문고리.

“어젯밤 서쪽 별관에서 나를 봤지?”

마레나는 대답하지 못했다.

리아가 아주 부드럽게 말했다.

“마레나, 겁먹지 않아도 돼요.”

그 목소리는 다정했다.

하지만 나는 그 다정함의 끝에 걸린 칼을 들었다.

마레나의 얼굴은 더 하얗게 질렸다.

성녀의 위로를 듣고 안심한 얼굴이 아니었다.

협박을 다시 떠올린 얼굴이었다.

나는 베일을 카엘에게 내밀었다.

“전하께서 정말 공정하시다면 이 베일을 신전이 아니라 황실 감정관에게 맡기십시오.”

“신전을 의심하겠다는 뜻인가.”

“성녀님의 물건을 성녀님 소속 기관에 맡기는 것이 더 이상하죠.”

리아의 눈빛이 잠깐 날카로워졌다.

아주 잠깐.

카엘은 그걸 보지 못했다.

아니, 봤어도 믿고 싶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마레나를 보호하십시오.”

내 말에 마레나가 고개를 들었다.

나는 그녀를 보며 또박또박 말했다.

“저 아이가 오늘 밤까지 살아 있어야 재판이 됩니다.”

방 안이 얼어붙었다.

카엘의 얼굴이 굳었다.

“네 말은 리아가 증인을 해칠 거라는 뜻인가?”

“아니요.”

나는 고개를 저었다.

“성녀님이 정말 결백하다면, 성녀님께도 필요한 조치라는 뜻입니다.”

리아는 더 이상 울지 않았다.

그녀는 나를 보고 있었다.

처음으로 피해자의 얼굴이 아니라, 상대를 재는 얼굴로.

좋아.

이제야 서로를 제대로 보게 됐다.

그 순간 복도에서 급한 발소리가 들렸다.

기사 하나가 문 앞에 무릎을 꿇었다.

“전하.”

카엘이 돌아보았다.

“무슨 일이냐.”

“서쪽 별관 기록실에서 보고가 올라왔습니다.”

기사의 목소리가 흔들렸다.

“어젯밤 세 번째 종이 울린 뒤, 출입 명부 한 줄이 검게 타 사라졌다고 합니다.”

리아의 손이 소매 안으로 숨었다.

나는 그 손끝을 봤다.

타버린 기록.

없어진 이름.

멈춘 시계.

이야기가 나를 정정하려 할수록, 오히려 빈칸이 드러났다.

나는 카엘을 향해 말했다.

“이제 이름 하나가 아니라 사건이 됐네요.”

카엘은 아무 말도 하지 않았다.

하지만 그의 눈빛이 달라졌다.

분노가 사라진 것은 아니었다.

다만 방향이 아주 조금 흔들렸다.

그 아주 작은 흔들림이면 충분했다.

나는 베일을 놓지 않은 채 똑바로 섰다.

목을 누르던 보이지 않는 압박도 어느새 사라져 있었다.

허공의 문장이 다시 번졌다.

Correction failed. (보정에 실패했습니다.)

그리고 마지막 줄.

Next correction will begin at the trial. (다음 보정은 재판에서 시작됩니다.)

재판.

역시 그곳이 다음 장면이다.

나는 입꼬리를 올렸다.

“전하.”

카엘이 나를 보았다.

“공개 재판을 여십시오.”

나는 멈춘 시계들을 둘러보았다.

“시간도 기다리고 있으니까요.”

창밖의 밤이 아주 천천히 움직였다.

그리고 멈췄던 초침 하나가 다시 앞으로 갔다.

똑.

이번에는 죽는 소리가 아니었다.

이야기가 억지로 숨을 다시 쉬는 소리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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